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 당 (문단 편집) === 1933/1: 집권 === 문제는 여전히 나치당이 32%의 의석 수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. 슐라이허 정권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. 슈트라서 일파를 끌어들이고 나치당을 분열시키려던 시도는 슈트라서 본인이 휴가를 간 사이에 계획이 발각되는 바람에 뭔가를 해보지도 못하고 끝장났고, 그렇게 자기 당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히틀러는 총리 자리가 아니면 절대로 연정을 할 생각이 없었고, 그렇다고 좌파 사민당하고 연정을 할 수도 없었다. 더군다나 보수 우파는 슐라이허 정권보다는 전임 총리인 [[프란츠 폰 파펜]]을 밀던 상황이었다. 이렇게 슐라이허가 물러나는건 기정사실화되었는데, 그 다음이 문제였다. 누군가가 정권을 잡기는 해야 하겠으나, 히틀러가 요구하는 단독 집권은 불가능했고, 파펜이 다시 취임하면 또 불신임에 붙여지고 사태가 루프할 가능성이 농후했으며, 좌파인 사민당은 그냥 처음부터 논외였다. 결국 파펜의 주도로 보수 국가인민당이 가담한, 나치 각료가 총리 포함 세 명뿐인 불안정한 우익 연립정권을 세우게 되었다. [[프란츠 폰 파펜]] 항목 참조. 총리는 히틀러였고, [[경찰]]권을 장악하는 내무 장관도 나치기는 했으나, 나중에라도 수틀리거든 파펜이 대통령인 힌덴부르크를 움직여 총리를 갈아버리고 도로 자기가 취임하면 그만이고, 이렇게 히틀러 정권이 무너진다면 당초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었던 나치당도 함께 무너질 거란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. 즉 히틀러는 총리 취임을 위해 정치 생명을 건 상황이었고, 총리에서 물러나면 그의 정치 생명도 같이 끝장나는 판이었으며, 그를 위해서는 [[바지사장|파펜에게 아주 자알 보여야만 했다.]] '''적어도 파펜과 보수 우파는 그런줄 알았다.'''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